정형기 동지의 삶과 죽음

 

 

고 정형기 동지는 1984년 기아자동차에 입사해서 운명할 때까지 현장노동자로 살아왔다. 입사 후 엄혹한 군사정권하에서 당시 어용노조를 민주화하기 위한 현장투쟁을 전개해 민주노조를 만들어냈고, 그 때문에 구속과 해고 그리고 수배를 당했다. 동지는 해고 중에도 ‘기아자동차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와 ‘전국 해고자 복직투쟁위원회’ 결성을 주도하는 등 현장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또한 95년에는 자동차연맹 사무처장. 민주노총 준비위원회 집행위원을 맡아 민주노조운동을 바로 세우는 일에도 앞장섰다.

 

1996년 기아자동차 화성공장에 복직한 후에도 현장조직을 결성하고 현장조직화를 위해 앞장섰고, 기아자동차노조 교육위원을 맡아 전국의 노동현장 교육활동을 전개했다. 나아가 단위사업장을 넘어서는 현장조직운동을 전개하는데 앞장섰고, 이를 위해 전국 단위 현장활동가조직인 ‘기아그룹 민주노동자회’, ‘민주노동자전국회의’, ‘현장실천노동자연대’ 건설에 주도적인 역할을 해 왔다.

 

또한 동지는 2000년 민주노총 1기 노동자통일선봉대 대장을 직접 맡는 등 노동자통일선봉대 활동과 매향리투쟁을 비롯해 노동자들의 자주통일투쟁에도 선구자적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2006년 ‘산별노조 건설, 현장권력 쟁취, 비정규직투쟁 승리를 위한 현장공동투쟁위원회’ 소집권자를 맡아 기아자동차 화성비정규직 투쟁을 모범적으로 전개했다.

 

이후에도 현장에서 현장조직화 활동과 함께 지역과 전국의 노동현장을 방문해 교육활동을 열정적으로 해 오던 중 2009년 4월 10일 기아자동차 화성공장에서 생을 마감했다.

 

동지는 기아자동차 민주노조운동의 역사를 개척하고, 자동차연맹과 민주노총을 세우는데도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현장조직운동과 노동자 자주통일투쟁, 그리고 비정규투쟁에서 새로운 모범을 만들어 왔다.

동지는 활동에서는 가장 원칙적인 사람이었지만, 대중에게는 항상 겸손했다. 모든 활동에서“현장이 생명이다”는 원칙과 “노동운동은 사회변혁의 영도계급으로 나서야 한다.”는 신념을 평생 실천해 왔던 진정한 노동운동가였다. 그리고 함께 했던 동지들에게는 훌륭한 지도자였다. 평생을 노동현장에서 민주노조운동과 현장조직운동을 개척해 왔던 동지는 조국통일과 노동해방 세상 건설의 신념과 열정으로 불꽃처럼 살았던 영원한 노동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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